이쯤에서 다시 보는 라이고
By 정기흥
2016-03-02 23:12:25 2212
2016년 2월 12일은 새해가 밝은 후 가장 뜨거운 하루였습니다. 미국과 한국 등 15개국 1천여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 연구단이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음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중력파 관측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관측장치인 라이고(LIGO)가 어떤 원리로 중력파를 찾아냈는 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라이고 홈페이지 영상 갈무리?https://www.ligo.caltech.edu/video/ligo20160215v1>


라이고란?


라이고는 길이 약 4km짜리 진공 터널 2개가 ‘ㄱ’자 형태로 놓여 있는 관측 기구 입니다. 양쪽 터널 끝에는 거울을 달아 중앙의 레이저 장치에서 발사된 빛을 반사합니다. 어떠한 외부 작용도 없을 시 반사된 빛은 똑같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부 작용이 가해진다면, 빛이 거울까지 갔다오는 통로인 그 터널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시공간이 휘어질 경우 이 터널의 길이나 모양이 변하겠죠.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건 이론적으로 중력파 뿐입니다.


이렇게 중력파로 인해 라이고 양쪽 터널 모양이 변하고 그로인해 빛이 반사됐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경로 또한 변하게 됩니다. 라이고가 그 차이를 기록하는 거죠. 이를 위해 중력파 외의 다른 환경적 요인을 배제해야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와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각 1대씩, 2대가 설치된 배경입니다.


중력은 매우 약한 힘이기 때문에 중력파를 관측하려면 극히 미세한 변화까지 측정 가능해야 합니다. 라이고는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 크기의 1,000분의 1밖에 안되는 작은 폭의 변화까지 관측할 수 있습니다.


중력파 말고 다른 건 아니고?



중력파 말고 다른 요인이 영향을 줄 수는 없을까요? 진공 상태에서 빛의 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빛이 오가는 공간 자체가 변한다면 빛의 운동이 달라지겠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중력파 뿐입니다. 중력파는 이동하면서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죠. 중력파가 지나가면서 진공관 자체의 길이에 영향을 준다면 빛의 운동이 달라질 것입니다. 실험의 정확도를 위해 다른 환경에 설치한 두 대의 라이고에서 똑같은 관측결과를 얻은 것도 환경의 영향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이번엔 진짜를 찾았다!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13억 광년(오차범위 7억5천∼19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 합쳐지면서 발생했습니다.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 29배인데요. 라이고 연구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두 블랙홀이 충돌하기 직전 0.15초 동안 발생한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가면서 라이고에 의해 관측된 것입니다. 중력파는 빛의 진행을 머리카락 굵기만큼 바꾸었습니다.


사실 2014년 3월, 미국의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진이 우주먼지의 흔적을 중력파 관측으로 오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면 이번 관측은 (어디와 어디) 두 대의 라이고에서 같은 신호가 검출 되었기 때문에 잡신호일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력단은 공식 발표를 통해 중력파가 아닐 확률은 500만분의 1 이하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사를 다시 쓴 사람들


라이고 프로젝트는 미국 과학재단(NSF)이 중력파 검출을 위해 2000년부터 10년간 6억 2천만 달러를 투입한 대규모 사업인데요. 이 연구에 세계 80여개 기관 1,0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2011년부터는 탐지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2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습니다.


그 후 2015년 9월부터 2세대 검출기인 어드밴스드 라이고(advanced LIGO) 가동을 시작했는데요. 작년 9월 14일, 중력파를 관측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재가동을 시작하자마자 관측에 성공한 것이죠. 올해 2월 12일에 발표한 내용이 이 때 관측된 겁니다. 그동안 추가 검증하고 논문도 만들면서 착실히 발표 준비를 해왔다는군요. 이런 과학 두뇌들의 노력과 대규모의 지원, 적극적인 투자가 이룩해낸 쾌거였습니다.


우리 빠지면 “섭하지~”


국내 연구진도 한 몫 했습니다. 서울대, 한양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의 연구진들은 2002년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을 발족하여 꾸준히 연구역량을 길러 왔는데요. 2009년에 라이고과학협력단(LCS)에 가입하여 연구에 힘을 보탰습니다. 한국 연구진은 LCS에서 잡음·신호 분리 알고리즘 연구와 실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연구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KAGRA 로고 http://gwcenter.icrr.u-tokyo.ac.jp>


뿐만 아니라 2011년 일본 중력파 검출기인 카그라(KAGRA) 국제연구협력단 가입, 새로운 중력파 검출기 SOGRO연구 참여 등을 통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현실은...


국내 연구진은 꾸준한 연구와 그 결과물로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죠. 예산부터 그렇습니다. 국가 예산의 사용에는 고려할 사항이 많겠지만 외국에 비해 거대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 비중이 적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번 중력파 연구도 국내 연구진이 관측 시설 설치를 정부에 먼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과학계에서도 괄목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주어야겠지요.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는 과학계도 정부도 쉽지 않습니다. 우주 연구 같은 거대과학을 연구하는 시설을 지으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라이고 프로젝트도 추가 개선 비용을 제외 하더라도 10년 간 6억 2천만 달러(약 7,653억 원)가 투자되었습니다. 국내 실정에 맞게 규모를 줄인다 해도 국회 예산 통과가 쉽지 않을 겁니다. 언제쯤 우리는 라이고 같은 프로젝트를 주도해볼 수 있을까요.


정기흥 기자(jeonggh13@scientist.town)

이웃집과학자 명예의 전당